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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3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by docmonami
  2. 2014.04.15 런던 디자인 박물관 by docmonami
  3. 2013.03.13 취리히 디자인 박물관 by docmonami
  4. 2013.03.13 중화민국(대만) 타이베이의 국립고궁박물원 by docmonami
  5. 2013.01.19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by docmonami
  6. 2012.12.26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by docmonami
  7. 2012.12.26 바티칸(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by docmonami
  8. 2012.12.23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 by docmonami
  9. 2012.08.16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by docmonami

 

 

헬싱키에 있는 디자인 박물관이 올해로 설립 140주년을 맞이하였다. 1873년에 처음 설립된 디자인 박물관은 핀란드 디자인의 산 역사로서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 오고 있다. 


핀란드 디자인 박물관은 1873년에 현재 국립 미술관 건물인 아테네움(Ateneum)에 자리하였는데, 이 박물관의 첫 소장품들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로부터 온 732점의 전시품들로 현재 알토 디자인 대학(Aalto University of Arts, Design, and Architecture)인 과거 헬싱키 공예학교 (Craft School)의 학생들을 위한 수업 자료로 쓰였다. 과거 박물관의 역할은 현재의 그것과는 조금 달라 학교와 같은 교육 기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핀란드 디자인의 정체성이 제대로 서지 않아 사실상 스웨덴, 영국, 프랑스 등 타 유럽 국가들에서 만들어진 물건의 외형을 좇기 바빴기 때문에 지금의 핀란드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화려하고 장식적 요소가 많은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소장품들 대부분은 당시 서유럽에서 빠르게 퍼진 대량 생산에 기초한 도자기였다. 점차 소장품의 수가 늘어나 저장 공간이 부족하자, 1911년, 박물관은 건물을 중앙역 뒤 현재 헬싱키 시 박물관이 위치한 하까살미(Hakasalmi) 저택으로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소장품의 3분의 2는 수집가 안텔(H.F.Antell, 1847-1893))이 수집한 물건으로 페르시아, 중국, 일본, 유럽 각국의 은 식기, 직물, 금속 제품 등이 속해 있었다. 안텔은 세계 각국에서 모은 상당량의 예술, 디자인 제품들을 핀란드 국민에게 기부하여 디자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Rauno Träskelin)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박현선)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박현선)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이 현재의 건물에 둥지를 튼 것은 1979년, 불과 30여 년 전이다. 처음 732개에 불과했던 소장품은 그 수와 영역을 넓혀 사진과 그림 작품 역시 포함, 현재 7만 5천여 개로 늘어났다. 그 사이 핀란드 디자인은 그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게 되었고 이는 국내외에서 인정을 받는 수준에 이르렀다.


설립 140주년을 맞은 디자인 박물관은 "Design Museum 140"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기획하였다. 이번 전시에는 안텔의 기부 작을 포함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모두 한 자리에 진열하고 핀란드의 역사적 사건들도 함께 시각화하여 함께 전시하여 핀란드의 역사 흐름 속에서 디자인 역사가 어떻게 변모하했는지 볼 수 있는 전시를 꾸몄다.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박현선)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박현선)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박현선)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디자인 박물관의 소장품들 (이미지 ©: 박현선)




이번 전시에서는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해 볼 만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점이 흥미로운데 Otherness, Power, Sexuality, Failure, Gender, Activism, Anarchism, Political affiliation, Copyright, DIY design, Geography와 The curse of ornament 등 12개의 주제를 던지고 디자이너와 디자인 관련 종사자, 혹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짤막한 칼럼을 맡겨 같이 전시 했는데, 이 칼럼들은 과거와 현재의 디자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비평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앞으로 고민해 볼 기회를 준다. 


전시실 중에는 방문객의 의견을 듣기 위한 방 역시 마련되어 있었다. 이 방에는 박물관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고 변화를 꾀하는 디자인 박물관의 노력이 보이는 설문지가 놓여 있고 벽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박물관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2. 디자인 박물관의 미래 과제는 무엇일까? 3. 왜 박물관 소장품이 필요한가? 4. 디자인 박물관이 왜 필요한가? 5. 누가 박물관 소장품을 해석하고 전달할 자격이 있을까? 6. 박물관 전시품의 어떠한 정보를 알고 싶나?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12가지의 주제 (이미지 ©: 박현선)

헬싱키 디자인 박물관 140주년 기념 전시 - 이미지
설문지를 작성할 수 있는 방. 예술가 오우띠 뚜르페이넨(Outi Turpeinen)의 디자인 (이미지 ©: Rauno Träskelin)

펌---http://www.designdb.com/dreport/dblogView.asp?gubun=1&bbsPKID=20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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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런던 타워와 런던 브리지 근처에 있던 런던 디자인 박물관.

처음엔 유료라.. 아마.. 우리 나라 10파운드 정도 였으니.. 우리 나라 돈으로 2만원 정도? 그냥 갈까 했었는 데, 안갔으면 많이 후회했을 뻔했다.

  대영박물관에서는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그 밖에 박물관에서는(회화가 위주니..) 영국이란 나라가 얼마나 문화적으로 강국인지를 느낄 수 있다면.. 이곳은 영국의 젊은 힘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른 곳이 클래식하다면, 이곳은 펑키! 뉴~

 입장료가 2만원.. 이 사진처럼.. 조금 작은 박물관인 데.. 사실 꼭! 딱히 볼것은 없지만.. 이곳을 보고 느끼지 않았으면 영국의 어떤 한 면만을 보았을 듯하다.

  

 깔끔한 모더니즘 계열의..--;(너무.. 과대포장인가?) 벽면..

 

디자인에 대한 역사가 쭉~ 나와있었다. 다른 박물관에서도 느낀 것(특히 테이큰 브리튼의 벽면을 차지하는 미술사 연표는 정말!! 짱이었다.)이지만,, 이런 디자인 박물관도 역사를 기록해 놓고 관람자들에게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알고,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역사를 사랑하는 대단한 민족인 것은 인정!

 

 

 

래빗 모양의 쓰레기통. 이 쪽 층은 우리가 평소 쓰는 물건에 대한 아기자기한 디자인들이 선보여졌었다.

 

 

윗층엔 다양한 건축물들이있었다.

 

멀더신을 믿는 내게 어울림직한 유에프오 건물 

 

 

내가 두번째로 좋아했던 공간! 좁은 어두운 통로에 단순한 그림들이 걸려있었다. 어찌나 아늑하던지.. 이곳 바닥에 앉아서 계속 하늘만 보고 있었다. 

 

으악! 난 이걸 보고 쓰러졌다. 이 이쁜 유치한 색감! 단순한 봉투이지만, 우리 생활 속에 디자인이라는 것이 얼마나 가까운 지, 그리고 그것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너무나 잘 포착했다고 생각한다. 나도 나중에 원룸에서 살면. 이렇게 구획을 지어야지 하는 생각까지.. ! 강추! 작품!!  

 

 

골판지로 만든 글자들.. 지금 나도 글자체에 따라 감성이 달라진다  믿는다. 글자체에 대한 디자인!

 

 

 

 

 

 

 히히~ 이쁘게 웃어요~ 스마일~

 

디자인 박물관 다운 외벽! 이곳에서 파는 계란 반숙이 살껄 그랬나.? 계란을 먹지도 않는 내가 사고 싶게 만든 런던의 디자인갤러리.. 이곳은 다른 유명 영국 박물관에 비해 조금 특이하다.( 사치 갤러리도 무지 특이하다고 하는 데.. --;)

하지만 잘~ 보면..  이곳 역시 매우 영국적인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두터운 예술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전통적인 새로움!

 

펌---http://blog.daum.net/princessfromthemoon/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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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디자인 박물관(독일어: Museum für Gestaltung Zürich)은 취리히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디자인, 시각 커뮤니케이션, 건축, 수공예에 관한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취리히 크라이스(Kreis) 지역의 본관 건물, 취리히호(湖) 기슭의 벨레리베박물관(Museum Bellerive), 플라트라움(Plakatraum), 잠룽겐(Sammlungen) 네 곳에 있다. 취리히예술대학교의 문화분석과(Department of Cultural Analysis) 산하에 있다.

1875년 설립된 예술공예박물관(Museum of Arts and Crafts)을 모태로 하여 발전하였다. 1933년 박물관과 예술공예학교(School of Arts and Crafts:1878년 설립. 이후 취리히예술대학교가 됨)가 크라이스에 있는 건물로 이전했다. 크라이스의 건물은 아돌프 슈테거(Adolf Steger)와 카를 에겐더(Karl Egender)가 설계했으며 현재 대형 전시관, 미술관, 로비, 카페, 상점, 강의관 등이 있다. 1968년부터 운영하는 벨레리베미술관에서는 응용미술 수집품을 전시한다.

소장품은 크게 33만 점의 포스터 부문, 그래픽, 1만 점의 상품과 2만 점의 포장을 보유한 디자인 부문, 15만 점 이상의 응용미술 부문 네 가지로 나뉜다. [네이버 지식백과] 취리히디자인박물관 [Museum of Design Zürich] (두산백과,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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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는 중화민국 베이핑(현재 중화인민공화국베이징이라고 부르는 곳) 고궁(자금성)에 있었으나 국공내전 시기 장제스의 명령으로 그 유물 거의 대부분을 대만으로 실어와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한민국국립고궁박물과 다르니 혼동하지 말 것. 한글로는 마지막 글자만 다르지만 한자로는 '고궁'의 '고' 자도 다르다. 한국의 국립고궁박물관은 古, 대만의 국립고궁박물원은 故를 쓰고 있다.


 

2. 압도적인 유물수

국공내전 당시에 중국 국민당패주하면서 베이징자금성 고궁박물관에 있던 유물을 싹 털어서 가져왔다. 장개석은 피난민을 이주시킨다는 이유로 미군에게서 군함을 빌린 다음 피난민 따위는 나몰라라 하고 대부분을 유물 운반에 사용해서 미국을 분노케 했다(...) 공산당 입장에서 보면 빡치는 일이겠지만 이로 인해 수많은 유물이 문화대혁명으로부터 무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이때 옮겨진 유물은 총 65만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동파육을 본따 조각한 육형석(肉形石). 취옥백채와 더불어 대만최고의 유물로 손꼽는다.

반세기 동안 늘어난 북경 고궁박물원의 현재 유물 숫자는 대만 고궁박물원보다 더 많다고는 하지만 전시품의 질과 중요성에서는 아직도 대만고궁박물원이 월등하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지금 대만 고궁박물관의 유물들은 황실에서 가지고 있던 황실유물이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높으신 분들이 대대로 모은 유물들이다 보니 퀄리티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성공한 덕후건륭제가 수집하여 직접 목록까지 정리한 컬렉션은 압권. 실례로 법랑채 자기의 명품은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1940년대 이전 발굴된 유물들도 죄다 대만 고궁박물원이 소유하고 있어 발굴유물 수준도 상당히 높다.

북경 고궁박물원도 최근 발견된 유물들에 힘입어 수준이 많이 올라갔지만, 아직 많이 밀리는 것이 사실. 세계 7대 박물관을 꼽으라면 북경고궁박물원은 들어갈까 말까지만, 대만고궁박물원은 세계 3대 박물관(혹은 4대 박물관)에 항상 포함된다. 게다가 3개월 단위로 유물을 바꿔서 전시하는데 60여년째 겹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위에 나오듯이 중국은 문화대혁명 당시 자국 무수한 문화재를 박살낸 게 하두 많아서... 나중에 최대한 복원하긴 했지만 덕분에 무수한 중국 문화재가 이어붙인 흔적이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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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G image (1.58 MB)]

참고로 카더라에 따르면 대만 산속 어딘가에 유물을 숨겨서 보관중이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미스테리이니 단순한 도시전설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유물의 대부분이 말과 대의 유물이라는 것은 단점.[2] 아무래도 국민당 정부가 급하게 튀면서 챙긴 것이 대부분인데다가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고고학적 지식이 정립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고대 유물의 보존이 잘 되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럼에도 정(鼎)이 이렇게 널렸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양이 소장되었고, 국사 교과서에서 어쩌다 마주쳤을 당삼채(唐三彩)가 정말 크고 아름답게 전시되었으므로 보기도 전에 실망부터 하지는 말자.

요나라때 만들어진 자기인 여요연화식온완(汝窯蓮花式溫碗)

마잉주 집권 이래로 대륙 관광객들이 대만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데, 인터넷의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이런 일도 있었다 한다. 한 중국 관광객이 유물을 보면서 자꾸 손으로 만져댔는데, 주변 사람들이 주의를 주자 '이건 국민당이 중국에서 훔쳐온 건데 좀 만진다 해서 뭐가 잘못이냐'하고 되려 역성을 내서 언쟁으로 번졌다는 이야기.

하여간 대만의 정통중화문화부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곳. 2011년 10월에는 마잉주 총통이 전시공간을 5배로 늘리겠다고 했다. 대만을 중국문화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나.

3. 찾아가는 길

세계적인 박물관이지만 주변 지역이 산기슭이여서 타이베이 첩운과의 접근성은 별로 좋지 않다. 가장 쉽게 가는 방법은 타이베이 첩운 홍선을 타고 스린역[3]에서 내려서 버스로 환승하는 방법이다. 이런 버스들 중에는 종점이 고궁박물원인 버스도 있다. 시내에서 택시를 탈 경우 타이베이 처찬을 기준으로 80~130NT 정도면 갈 수 있다. 향후 순환선인 타이베이 첩운 황선이 국립고궁박물원을 지날 예정이지만 현실은 시궁창.

4. 방문시 참고 사항

  • 큰 가방과 음료는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다. 짐은 매표소 옆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맡긴다. 물품보관소에 짐을 맡기면 플라스틱 번호표를 주는데, 그게 바로 짐의 번호이다. 반드시 챙겨둬야 한다. 입장을 할때 검표를 하고 금속탐지기를 지나간다. 핸드폰 및 카메라를 가지고 들어갈 수는 있지만 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와이파이가 안잡히고, 방마다 1~2명씩 박물관 직원이 있어서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그 즉시 제지당한다.  사진 촬영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주기적으로 카메라 반입 자체에 제한이 걸리는 모양이다.
  • 한글 팜플렛이 제공되며 한국어 음성해설도 지원(100NT,여권을 같이 제시하여야 한다.) 이 되어 유물앞에 붙어있는 음성해설 번호를 입력하면 해설을 들을 수가 있다. 기타 유물 표제에는 한글이 없이 간자체/번자체, 일본어, 영어만이 제공되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옥으로 만든 배추인 "취옥백채". 자세히보면 여치도 보인다.
  • 대만 여행을 하려는 여행객들에게 팁을 주자면 금토일과 휴일 낮에 절대로 가지 않는 것이 좋다. 박물관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대륙 여행객(...)들의 인파와 소란함에 피곤이 급속도로 몰려오며 유물 구경도 제대로 못할 수 있다. 특히 유명한 '취옥백채(翠玉白菜)' 유물이 있는 3층은 이때 2층부터 이어진 줄 때문에 절대로 들어갈 수가 없다 (…). 박물관 구경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평일이나 휴일 오전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5. 베이징에 있던 국립고궁박물원의 현재 상황

아직 본 위키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고궁박물원에 대한 문서가 작성돼 있지 않습니다. 만약 이 박물관에 대해 상세한 내용을 서술하고자 하는 분이 계신다면 별도의 고궁박물원 문서로 분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베이징에 남아 있던 국립고궁박물원을 고궁박물원#으로 개칭해서 유물들을 전시 중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박물관이 무조건 국유 시설물이므로 굳이 국립이라는 표현이 필요 없다고 판단해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중화인민공화국의 관점에서는 대만에 있는 '국립고궁박물원'은 유물들을 '훔쳐가' 옛 국립고궁박물원을 사칭하고 있는 가짜이고, 베이징의 고궁박물원이야말로 옛 국립고궁박물원의 진짜 후신이다.[4]

· 시대의 중요 유물들은 대만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이 시대 유물들이 빈약한 상태라고 한다. 대신 현대에 새로 발굴·수집한 유물들을 새로 가져다가 전시 중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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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쓰는 간화자로는 国立故宫博物院이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번체자를 사용해야 할 때에는 國立故博物院이라고 쓰는 게 원칙이다. 물론 원칙을 안 따르고 '宮'으로 적은 경우도 있긴 하지만... 참고로 宮/宫에 들어 있는 呂/吕(음률 려)는 원래 전통적으로 서로 통용되던 이체자이다.
  • [2] 그래도 고대 청동기와 자기 유물들은 상설전시, 명청대 유물은 순환전시로 진행되고 있어 딱히 둘러보는 데 있어서 비율상으로 부족하지는 않다. 그만큼 소장품의 수가 방대하다는 이야기.
  • [3] 장제스 부부가 살던 스린관저가 근방에 있으며 관람 가능하다.
  • [4] 애초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관점으로는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승계됐기 때문에 현재는 중화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지 않고, 대만에 있는 '중화민국'은 옛 중화민국을 사칭하는 가짜이다. 따라서 각종 국립 기관에 대해서도 유사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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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크고 아름다운 미술관. 센트럴 파크 동쪽에 붙어있다.


 

영국 런던대영박물관, 프랑스 파리루브르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기도 한다.[1]


 

르네상스 시대의 북부 이탈리아 건물을 방째 뜯어다 놓는다던가 중세 성당의 제대를 통째로 뜯어온다거나 심지어는 이집트 신전을 통채로 가져온다던가.. 등 스케일이 거대한 박물관이다. 이집트, 중국, 일본 등 컬렉션도 상당한 양과 질을 자랑하며, 유럽의 중세 물품이나 근대 회화 작품도 어느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다. 박물관의 주요한 인기 품목으로는 통째로 뜯어온 이집트의 덴두르 신전이나 인상파나 빈 분리파의 회화 작품들 등이 있다. 중세의 갑옷과 무기들을 모아놓은 곳도 가볼만 하다. 한국관도 있지만... 기대는 안 하는게 실망하지 않는 길이다. (작은 방 하나 정도의 규모..) 그렇지만 그게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다. 우리 문화재를 남의 나라에서 보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니까...


 

하루 관람으로는 상당히 부족하고 이틀은 봐야 만족스러웠다는 것이 중평. 중간에 나갔다 들어와도 입장료는 한번만 내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이건 본관만 본다는 가정하에 그런거고, 클로이스터라고 멘하튼 섬 북쪽에 위치한 별관도 있으니 여유가 된다면 한번 가보자. (미드타운에서 대중교통 이용시 가는데만 1시간쯤 걸린다. 주요 종교 관련 물품이 많다.)


 

옥상의 루프 가든에서 보는 센트럴 파크 주위의 풍경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관람하다 지치면 올라가보는 것도 좋다.


 

2011년 기준으로 성인 권장 입장료는 20달러. 학생은 12달러다. (2012년 10월 기준 성인 25달러로 인상) 하지만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입장료는 사실기부금형식이라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내도 된다. 절대 요금표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직원에게 기부금으로 들어가겠다고 하고 1달러만 내도 충분히 입장 가능하다. 별관인 클로이스터도 같은 기부형식이다.


 

또한 근처에 클림트 등 빈 분리파 시기 전후의 그림을 소장하는 Neue gallery나 Frick collection등의 중소규모 미술관도 가까이에 있으니 놓치지 말자. 다만 Neue gallery는 2011년 8월인 현재 3층을 리노베이션 중이라 관람할 수 있는 작품 수가 좀 적다. 대신 무료 입장 중. 그나마 어마어마한 가격을 자랑했던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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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 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루브르, 영국 런던대영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힌다.[2]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겨울궁전과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된 작품들의 규모가 매우 방대한데, 그 중에서도 특히 관람할 만 한 것은 125개의 홀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의 전시실로, 이곳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렘브란트 등 유명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본관은 원래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궁전[3]으로, 엘리자베타 여제 시기에 건축되었다. 이곳에 예카테리나 2세가 수집한 유럽의 예술품 컬렉션을 전시하기 시작해 그 뒤를 이은 차르들에 의해 계속 소장품이 모집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일반에 개방되어 현대까지 미술관으로 쓰이고 있다.


 

러시아 혁명 이후 구 귀족들로부터 몰수한 예술품들을 모아놓는 장소가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겨울궁전과 그 주위의 문예 연구기관들을 모두 결합시켜 현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되었다.


 

러시아 고유 예술품만 모아놓았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고대 이집트 유물부터 그리스,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인상주의를 거쳐 소비에트 시절의 예술품까지 모아놓은 박물관이다.[4] 소련 시절 한때는 경제개발을 위한 외화가 부족하여 소장된 예술품을 외국에 팔아먹기도 했으나, 소련의 경제가 발전하자 곧 소장품을 확대하였고, 현재에는 마티즈피카소 같은 현대 미술작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총 소장작은 270만점이고, 전시로의 총 길이는 27km이라니까, 며칠동안 가도 다 못보고 온다.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 베를린이 소련에게 점령당했을 때 독일인들이 베를린에 모아두었던 온갖 문화재들이 붉은 군대 병사들에 의해 이곳으로 흘러들어갔다. 특히 독일인들이 중동에서 긁어온 문화재는 거의 대부분이 약탈당해 에르미타주로 보내졌고 소련 해체 이후 상당수는 독일로 반환되었지만 그 중동 유물 중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로이 유적은 아직도 이 곳에 있다. 독소전쟁 초기 에르미타주 박물관 또한 독일군을 피해 피난했어야 했는데,[5] 수모를 멋지게 갚아준 샘.


 

2013년에는 박물관 맞은편에 위치한 구 참모본부 건물중 일부가 박물관으로 편입되었다. 그동안 소홀했던 현대 미술 전용 전시관으로 사용한다.


 

카잔과 핀란드 인근 비보로크, 암스테르담에 분관이 있다. 향후 블라디보스토크에 별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1907년 독일 자본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세워 현재 국영 백화점 건물로 쓰고 있는 역사적인 건물 쿤스트 이 알베르스(Кунст и Альберс)를 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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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으로 갑니다.

 

 

 

 

 

세계최고의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바티칸 박물관.

18세기 후반에 박물관으로 개조한 이곳은 원래 역대 로마 교황의 거주지 였다.

그 큰 규모만큼 관람시간도 오래걸리며 관람객도 많아 기다리는 시간도 오래걸린다.

16세기초 교황 율리우스 2세는 바티칸을 세계를 아우르는 권위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예술가를 로마로 초빙했는데 그중에는 당대 최고의 예술가도 많이 있었다.

그 후 600년에 걸쳐 바티칸은 전세계의 명작을 수집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입장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며 관람을 마친 다음에는 주세페 모모가 설계한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 나간다

 

박물관 입장시 검색대를 통과 한다.

 

 

15세기초 이래 교황들이 수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피오-클레멘티노 박물관

18세기 교황 클레멘스 14세가 세웠으며 교황 피우스 6세 때 확장되었다. 이곳에는 교황 율리우스 2세 때부터

 모으기 시작한 교황의 고대 조각 소장품들이 전시돠어 있다. 또한 19세기 교황 피우스 7세가 세우고

조각가 안토니오 카바노가 설계한 키아리몬티 조각관도 고대 조각품 전시관이다.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브라만테가 디자인한 미술관 안에 있는 전시관과 신증축관(브라치오 누오보), 뛰어난 고대 비명(碑銘)들이

 소장되어 있는 전시관(라피데리아) 등이다.

 

 

1836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가 세운(1924 개축) 그레고리아노 에트루스코(이탈리아 중서부 고대국가)

 박물관에는 에트루스카 발굴물과 레골리니-갈라시 무덤에서 발굴된 보석들과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다 1839년에 이르러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1797년 교황 피우스 6세가 세운 피나코테케

1932년부터 현재의 미술관(교황 피우스 11세가 세움)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에는 우수한

 이탈리아 종교화, 러시아와 비잔틴 회화들도 소장되어 있다

 

 

피냐정원(Pigna Courtyard); 이 정원은 1816년 Pirro Ligorio에 의해 만들어졌다.

 거대한 청동 솔방울 분수가 있는데, 이것은 아그리파의 욕실에서 발견된 것이다.

 

 

1956년에는 근대 미술품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여기에는 르누아르, 쇠라, 반 고흐,

 루오, 마티스, 피카소 등 19, 20세기 화가들의 비종교적인 작품들을 전시했다.

 1973년 바티칸은 현대미술 박물관을 처음으로 개장했으며 바티칸 궁에 있는 65개

전시관에 유럽·미국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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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아비뇽 유폐를 마치고 교황청이 바티칸으로 되돌아 온 이래 교황의 거주지가 된 이 곳의 대부분은

 20개에 달하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이다. 이 곳의 소장품은 역대 교황이 모은 것을 중심으로

고대 그리스 미술과 미술사적으로 다양한 시대의 진귀한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바티칸 박물관의 소장품 중

 아주 중요한 대표작만 골라 보는 데도 2시간이 걸린다.
미술관 및 박물관 개장시간은 9:00-14:00(하절기 17:00)까지이고 사진 촬영은 가능하지만

 후레쉬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내부에서는 혼란을 막기 위해, 피냐정원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박물관 내부에서는 직원의 지시에 따라 일방통행을 해야 한다.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현지 가이드로 부터 바티칸의 내력과 소장된 작품들에관해

 브리핑을 받는 장소 이기도하다. 관광객들

          에 점령당한 성당이 자구책으로 성당 내에서는 가이드의 육성 안내를 일체 금지.

 사전에 이곳 정원에서 설명 하도록 했다.

       

 

잔디밭 한켠에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날도 포모도로의 작품 '구(球) 안의 구(球)'가 있습니다.

안에 있는 작은 구는 지구를, 바깥에 있는 구는 기독교를 상징한답니다

 

 

티그리스강을 지배하는 물의 신 :

최근에 8각형 정원에 배치된 것으로 하드리아 시대의 조각을 모방한것이다. 바오로

        3세가 전망대에 가져다 놓았다. 처음 발견될 당시에는 머리와 오른쪽 팔, 왼쪽 손 등

여러 부분이 없었으나 미켈란젤로의 감독 아래 추가로 조각되었다.

       

 

트로이의 사제 라오콘은 그리스인들의 목마를 성 안에 들이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가

아테나여신의 노여움을 받아 두 아들과 함께 죽습니다.

 바티칸박물관의 효시가 된 라오콘상은 '신의 영역에 굴복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이라고들 말합니다.

자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두 아들을 안타까워하는 표정과

뱀에게 옆구리를 물리며 뒤틀린 허리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사방으로 팔각 회랑이 둘러싼 자그마한 팔각정원(코르틸레 오타고노)이 나옵니다.

라오콘상을 비롯한 고대 걸작 조각상들이 서 있는 곳.

 

 

 

 

 

제우스의 딸 아홉 뮤즈의 조각상을  모셔놓은 뮤즈의 방, 천장 프레스코화가 멋집니다.

18세기 화가 토마소 콘카가 학예, 음악, 무용, 시를 관장하는 뮤즈들과 아폴로의 신화를 그려넣었습니다

 

 

고대 조각상들은 팔다리나 머리가 사라진 채 발굴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예술가들은 몸통(이탈리아어로 토르소-torso)만 남은 조각상이 때로 사지가 온전한 조각보다

더 예술적이고 역동적이며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진짜 예술작품이라는 감흥을 받지요.

그래서 많은 조각가들이 미완성작이 아니라 일부러 신체 일부분을 생략한 작품을 만들게 되고

토르소는 그런 작품을 가리키는 조각 용어로 자리잡습니다.

인류 미술사에서 가장 사랑받았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세계에도 영감을 준 토르소 중에 토르소,

 '벨베데레의 토르소'입니다.

 

 

 

헤라클레스상은 2세기에 도금해 만든 청동상으로

19세기에 발견된 장소를 붙여 '폼페이 극장의 헤라클레스'라고 부릅니다.

여느 헤라클레스상과 달리 수염도 없고 마치 황제나 예술가처럼 우아하게 표현됐습니다.

중세 때 일부 교황들은 성기를 드러낸 조각상들이 외설적이라며

석고로 만든 무화과 잎을 덮어 가리게 했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

 

천정화가 특히 화려한 '지도의 회랑'

 

 

 

 

 

 

 

 

 

 

관람후 주세페 모모가 설계한

달팽이 모양의 나선형 계단을 내려가 박물관을 나간다

 

 

박물관 관람을 맞히고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으로 갑니다.

 

 

펌--http://cafe.daum.net/lcg420/H1eU/5652?q=%B9%D9%C6%BC%C4%AD%20%B9%DA%B9%B0%B0%FC&svc=to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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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초대형 박물관. 1759년 현재의 자리에 개장했다. 처음에는 자그마한 건물의 박물관이었으나, 대영제국이 세력을 키움에 따라 쉴새없이 본토로 들어오는 전리품을 수용하기 위해 점점 규모를 키운 결과 현재에 이르렀다.


 

입장료는  무료.  대신에 입구에 기부함이 놓여 있어 관람객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낼 수 있다. 박물관의 정식 명칭이 British Museum이기 때문에 영국박물관으로 불러야 맞지만, 어쩐지 동아시아권에서는 대영박물관으로 불리고 있다. 방송에서도 대영박물관이라고 일컫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대영(大英)이라고 하면 제국주의적인 느낌이 나서 그렇게 부르지 말자는 사람들도 늘고 있지만, 대중의 인식이 쉽게 바뀌긴 힘들 듯하다. 그리고 그 말은 잘못되었다. 이미 명나라나 청나라도 자기를 대명제국, 대청제국 등으로 불렀다. 한국인들의 대일본제국 이라는 용어에 대한 혐오감의 영향인 듯 하다.


 

흔히 프랑스 파리루브르 박물관, 바티칸의 바티칸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흔히 꼽힌다.


 

분명 영국 박물관인데 정작 영국 물건은 별로 없는 박물관이다. 한때 해가 지지 않았던 나라답게 세계 각국의 문화재를 전시중이다. 로제타 석을 비롯한 고대 이집트그리스 유물부터 로마 유물, 중국 유물, 심지어 남태평양쪽 물건들도 있다. 그래서 별명 중의 하나가 대도(大盜)박물관, 즉 '큰 도둑 박물관'(...).국제적으로 비난 여론이 크지만,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들을 수백 년간 안전하게 보존해왔다는 점에서 옹호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압권인 부분은 파르테논 신전에서 뜯어온 장식물(엘긴 마블)들과 기둥으로 장식된 파르테논 관. 물론 그리스에서는 돌려달라고 아우성이다. 이집트와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 또한 자기들 문화재를 훔쳐가 전시한 것이라고 이를 바드득 갈며 돌려달라고 한다. 실제로 성화에 못이겨 돌려주거나 배상금을 지불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반환을 거부하면서 버티고 있다.


 

2000년에 한국관이 개관했다! 근데 좀 심하게 외진 곳에 있어서 근처의 중국관, 일본관에게 규모 면에서 묻히는 듯 하지만(...) 삼성문화재단이 힘을 쓴 듯하여 다행히(?) 이곳의 문화재들은 정식으로 한국에서 대여받은 물건들이다. 당연하겠지만 유물의 질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컬렉션에 비하면 B급이다. 유물의 양도 유구한 한국 문화를 빅뱅이론 주제가 부르듯이 후다닥 보여주는 정도.


 

박물관이 매우 크고 아름답기 때문에 로비에서 대여해 주는 오디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서 한바퀴 돌고, 관심있는 부분은 나중에 별도로 관람하는 것이 시간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 안내기를 만들 때 대한항공이 협찬해서, 스카이패스 카드가 있으면 대여료가 할인된다.[1] 그리고 전시실 중간중간에 진짜 유물을 만져볼 수 있는 코너도 있으니 누군가 좌판을 벌리고 앉아있으면 가서 만져보자. 재밌다.


 

접근성이 영 좋지 않다. 여기 오려다가 길만 헤매고 허탕치는 관광객들도 상당한 듯. 런던 지하철을 이용한다면 토트넘 코트 로드 역이나 홀본 역에서 하차후 열심히 걸어와야 한다. 버스 38번 타면 바로 앞길에 내려주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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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등이 유명하다. 크기는 심각하게 커서 무려 3동으로 나뉘어있으며 1개동을 다 도는데 반나절(약 5~7시간)이 걸린다. 다 보려면 이틀은 기본. 아니, 이틀로도 부족할지 모른다.정~말 중요한 것들만 그려진 안내도.


 

크게 쉴리 관, 드농 관, 리슐리외 관으로 나뉜다. 크기가 이렇게 큰 것은 과거에 성이었던 곳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 정확히 말하면 왕궁으로 1200년에 국왕 필리프 오귀스트가 이곳에 성채를 축조한 데서 비롯되었고 1527년 프랑수아 1세는 중세의 루브르 성 개조를 계획, 전부를 헐어버리고 르네상스 양식의 새로운 궁전을 세울 것을 결정, 피에르 레스코와 장 구종이 설계를 담당, 레스코가 현재의 살 데 카리아티드(여인 기둥의 방)와 국왕의 2층 거실을 세우고 내외의 조각장식은 장 구종이 담당했다.


 

이후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가 왕궁의 서쪽에 튈르리 궁전을 세웠고 이후 앙리 4세 시대에 걸쳐 센강 연변에‘물가의 장랑’이라 불리는 그랜드 갤러리(그랑드 갈르리)를 증축하여 루브르와 튈르리 두 궁전을 연결시켰다. 이후 이 회랑은 주로 궁정의 화가 ·조각가 ·공예작가 등의 주거지 겸 공방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624년 재상 리슐리외는 건축가인 자크 르메르시에에게 명하여 루브르 궁 확장공사를 시행하였다. 1641년 루이 13세의 명의로 니콜라 푸생과 그 제자들이 그랜드 갤러리에 신화를 소재로한 벽화의 연작을 시도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완성되었고, 1661년의 화재 후, 왕의 거실과 남쪽 복도를 연결하는 프티 갤러리가 재건되고 르 블랑과 그 제자들이 내부장식을 하였으며, 그후 이 갤러리 천장 중앙에 외젠 들라크루아가 『피톤을 퇴치하는 아폴로』를 그렸다.


 

1664년 루이 14세의 재상 장바티스트 콜베르는 루브르 궁을 프랑스 왕의 주요궁전으로 할 것을 결의, 설계를 위촉하고 기초석도 놓았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 왕의 관심이 베르사유 궁전으로 치우쳤으므로 루브르 궁 계획은 일단 마무리되고 1674년에 페로의 안을 채용하여 일단락지으면서 결국 루브르는 빈 궁전이 되었고, 결국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이 붕괴되면서 루브르는 국민의회의 결정으로 궁전에서 미술관으로 개장,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그러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프랑스 제국을 선포, 황제가 되면서 루브르는 다시 왕궁으로 되돌아오게 되었고, 이후 여러 건축가들에 의해 수축과 새로운 장식이 가해졌으며 루브르와 튈르리 사이에 카루셀 개선문이 세워졌다. 이후 제 1제정이 붕괴되고 부르봉 왕가루이 18세가 프랑스 왕위를 되찾았고, 루이 18세는 베르사유 돌아가지 않고 대신 루브르에 있게 되었고, 이후 혁명으로 부르봉 왕가를 몰아낸 오를레앙 왕가 또한 루브르에 기거하면서 퇼르리 북쪽에 회랑을 증축해 루브르와 연결시키려고 했으나 1848년 2월 혁명으로 붕괴되면서 무산되다가 1852년 나폴레옹 3세에 의한 제 2제정이 들어서면서 파리 개조계획의 일환으로 루브르 궁 완성을 계획하였으나, 1853년 처음 설계자인 위스콘티가 사망했으므로 루푀르에게 명하여 위스콘티안에 다시 살을 붙여 1857년에 완성하였다.


 

신관은 이탈리아 풍의 힘찬 조소성, 웅대한 돔 형인 망사르 지붕의 파빌리온 군의 장관으로 제 2제정식 대표작이 되고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1863에 시공되어 1868년에야 센 강변에 남쪽 갤러리가 개축됨으로써 루브르는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안쪽 중앙에는 루브르의 상징이 되어버린 유리 피라미드가 있다. 물론 루브르가 있던 옛날부터 있던 구조물은 절대 아니다. 기념 행사를 하면서 기념물을 공모하여 만들어진 것. 건축가 이오밍 페이(I.M.Pei)와 그의 피라미드 안이 선정되자 여론이 다들 유리 피라미드가 루브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거세게 반발하였다. 그러자 주최측에서 거절하려고 했었는데, 그러자 건축가는 '피라미드는 영원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이 피라미드가 있는 루브르는 영원할 것입니다'라고 홍보를 했고, 결국 채택되었다. 지금은 아주 성공적인 구 건축과 신 건축의 조화로 인정받고 있다.


 

루브르는 중세에서 혁명 이전까지, 꽤나 클래식한 작품들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취향이 아닌 경우에는 루브르를 과감하게 제끼고 오르세 미술관이나 오랑제리 미술관, 퐁피두 센터 앞에 줄을 서는 쪽이 좋다.모나리자 좀 안보면 어때 루브르는 입장료가 꽤 센 편인데, 10월에서 3월까지 매달 첫번째 일요일이 무료 입장의 날이다(2014년부터 4월에서 9월까지는 매달 첫번째 일요일에도 유료 입장이다). 다만 이 날에 가면 눈앞에 펼쳐진 헬게이트를 보게 될 것이다. 피라미드 출입구 대신 잘 알려지지 않은 남서쪽 포르트 데 리옹(Porte des lions; 사자들의 문) 출입구를 이용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EU 국가 내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입장료를 내지 않고 입장할 수 있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예술계통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무료이다.


 

루브르 내에서 제일 사람이 붐비는 스팟은 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의 3군데. 사모트라케의 니케는 꼭 유명해서라기보다는 루브르의 주 관람경로의 갈림길 상에 위치한데다 계단홀 중간이라는 위치가 한 몫 한다. 모나리자의 경우 그 명성에 비해 그림 크기가 심히 작고, 사람은 엄청나게 몰려있고, 다른 작품과 달리 안전봉에 의해 접근이 3m정도 제한되는데다, 직원이 다음 사람을 위해 빨리 보고 지나가라고 득달하는 통에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패키지 투어 중 짧게 루브르에서 자유시간을 주는 경우에는 차라리 회화 종류는 뮤지엄샵에서 판매하는 루브르 박물관 전시도록을 구입[1]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지하층~1층에 배치된 이집트-메소포타미아 유물을 감상하는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회화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은 감이 있지만 바로 이곳에 함무라비 법전의 원본과 사이즈에서 관광객을 압도하는 라마수 조각상, 그리고 이집트의 앉아있는 서기상 등 유명한 고대 조각들이 많이 몰려있다.
대한항공이 힘을 쓴 덕분에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에 한국어가 지원된다.[2] 주요 작품들을 빼놓지 않고 설명해 놓아서 혼자 유유자적 관람하더라도 거의 불편함이 없다. 너무 넓어서 가이드 대동하고 하루 보는것보단 PDA를 빌려서 며칠간 보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3] 또한 한국어로 인쇄된 가이드 팜플렛도 준비되어 있어 관람에 매우 도움이 된다.


 

영국의 대영박물관과 함께 대도둑 박물관중 하나로 손꼽힌다.[4]


 

09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라키 히로히코에게 '방드 데시네'를 의뢰, '키시베 로한 루브르에 가다'를 내기도. 아라키가 직접 통제구역을 포함한 루브르 곳곳을 돌아다니며 취재하여 그린 것으로, 루브르 박물관을 무대로 하는 로한의 기묘한 모험을 다루고 있다.


 

2012년 12월 랑스(Lens)에 분관을 오픈했다. 일본의 건축가 듀오 SANAA가 설계.


 

2013년 4월 10일[5] 소매치기 문제가 가면 갈수록 심각해지자 직원들이 경비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하루동안 파업했다.


 

관람료가 비싸지만 상설 전시관은 26세 이하의 학생은 국적을 불문하고 유럽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유학생비자만 보여주면 무료 관람 가능하니 유럽 쪽으로 유학이나 교환학생가는 위키러들은 꼭 상기할 것. 이건 파리 내 대부분 박물관에서 적용 가능하니 꼭 비자 가져가라. 아니면 관람료 폭탄을 맛보게 될 것이다(...)


 

2013년 11월 27일에 닌텐도닌텐도 3DS용 가이드 소프트웨어를 출시했으며 가격은 2만 원이다. 방문할 생각이라면 미리 사두는 것도 괜찮아 보이겠지만 현지에서 가이드가 내장된 3DS를 대여해주고 있다(...)


 

루브르 학교(Ecole du Louvre, 에콜 뒤 루브르)도 있다. 그랑제꼴이며, 문화재보존, 고미술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으로 들어가기는 힘드나 졸업하고 취직한다고 큰 돈을 만지는 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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